고구려인가? 고구리인가?
1. 서설
몇 년 전 모 사학자가 高句麗는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후 고구려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과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 양쪽 다 주장에 근거가 있다. 왜냐하면 麗는 "려"로도 "리"로도 읽을 수 있고, 어떤 사적에는 高句麗를 고구려로 읽는다는 내용이 나오고, 또 어떤 사적에는 고구리로 읽는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자는 高句麗를 고구려로 읽는 것은 무식의 소치라고 주장하거나, 일제가 어떻게 했다느니, 상고음이 어떻다느니, 당나라 육덕명(陸德明)의 설명이 어떻다느니, 칼그렌 소리값이 어떻다느니, 중국인들이 어떻게 읽느다느니, 일본인들이 어떻게 읽는다느니 하며 저마다 아는체 하며 자기 유식을 자랑하고 있다.
高句麗 국명은 나라를 세운 고구려 사람들이 高句麗를 뭐라고 부른지가 중요하지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한 것인가? 중국의 자전에 高句麗를 고구리라고 읽는다고 적혀 있으면 고구려 원래 이름이 고구리로 변하는 것인가?
필자는 순수 환빠는 아니지만 환빠로 불러주기 바란다. 필자의 홈페이지에는 환단고기 내용이 소개되어 있고, 환단고기 내용 중 많은 부분을 홈페이지에 인용해 놓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필자가 환단고기 내용을 전부 다 믿는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환단고기 내용 중 상당 부분은 고대의 전설에 지은이의 상상력 또는 희망사항을 더하여 지은 것이거나 후대의 가필 또는 과장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원본 고기를 보고 지은 부분도 상당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기를 연구하여 고기 중에 어느 부분은 문제가 있고 어느 부분은 원본 고기를 보고 지은 것이라는 것을 가려 낼 능력을 기를 생각은 않고 모조리 싸잡아 위작으로 매도하는 것도 모자라 소위 환빠 까는 재미로 사는 사학도들이 더러 보이기 때문이다. 高句麗라는 국명을 고구려로 읽어야 할지? 고구리로 읽어야 할지? 하는 문제는 고구려라는 국명이 어떻게 하여 생겼는지 그 연원을 모르면 답을 알 수가 없다. 중국의 정사나 아무리 유명한 자전을 가지고 와서 들먹이더라도 그것은 중국인들의 견해를 적은 것이지, 고대 우리민족이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을 어떻게 하여 짓게 되었고 국명을 뭐라고 불렀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분 중에 골수 환까가 있으면 이 글 읽다가 위작한 환단고기 인용한다고 열불이 나서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질 분이 생길지 모르니 사고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이쯤에서 나가주기를 권한다.
2. 고구려라는 말의 어원
고대에 우리 민족이 지은 지명이나 국명은 우리 민족의 고대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고대 우리민족이 사용한 지명, 국명을 이해하려면 고대 우리민족의 신앙을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古記에 의하면 고대 우리 민족은 하늘에 하늘나라(天國)가 있고, 해와 달이 하늘나라 임금(天帝)이며, 낮에는 해님이 다스리고 밤에는 달님이 다스리며, 인간의 출생(出生).생사(生死).질병(疾病) 등 인간만사와 가뭄.비.천둥.바람 등 자연현상은 하늘나라 임금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고대 우리 민족은 천지가 개벽하고 지상에 우리민족의 고대 국가가 생겨난 것은 하늘나라 임금님인 桓因이 아들 桓雄과 무리 3천명을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보내어 생겼다고 믿었고, 그래서 고대 우리민족은 자신들을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고 칭하였는데, 뒤에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는 말을 漢字로 적으면서 하늘나라와 해님을 뜻하는 한자로는 不(불). 弗(불), 沸(불), 桓, 高, 白, 玉 자 등을, 무리를 뜻하는 한자로는 黎, 與, 曹 자 등을 사용하여 앞뒤에서 각 1자씩 따와 불여(不與), 고려(高黎) 등으로 적었다. 후에 다른 한자를 사용한 명칭도 생겨났는데 화려(華麗:華黎→華麗), 불내(不耐:不與→不濊→不耐), 옥조(沃沮:玉曹→沃沮) 등등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들을 총칭하여 구려(九黎)라 하였는데, 九黎의 九는 고대 우리 민족의 방위개념으로 주변 8방(八方 : 동,서,남,북, 중, 서북, 서남, 동북, 동남)과 중앙(九)을 뜻하므로, 九黎는 온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무리 또는 천하의 중심지에 살고 있는 무리라는 뜻이다. 九가 온세상이라는 뜻으로 사용될 때는 하늘을 九天이라 부르고, 땅을 九地라 불렀다.
위 불여(不與)는 하늘나라에서 하늘나라 임금(不:불, 태양 지칭)의 아들 환웅(桓雄)과 함께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與.黎)라는 뜻이다. 이 불여(不與)가 뒤에 부여로 발음되자 발음대로 夫餘, 扶余 등으로 적었다. 그리고 고려(高黎) 역시 하늘나라(高)에서 하늘나라 임금님의 아들 환웅(桓雄)과 함께 지상세계로 내려 온 무리(黎)라는 뜻인데, 뒤에 같은 발음의 다른 한자인 고려(高麗)로 적었다. 즉 부여나 고려는 둘다 고대 우리민족의 신앙에 따라 하늘나라에서 하늘나라 임금님(不:불, 태양 지칭)의 아들 환웅(桓雄)과 함께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與.黎)라는 뜻이다. 不與(불여:뒤에 부여로 바뀜)의 "與" 자나 高黎(고려: 뒤에 高麗로 글자가 바뀜)의 "黎" 자는 무리라는 뜻이다.
자! 이제 부여나 고구려의 원래 명칭인 不與나 高九黎(뒤에 高句麗로 글자가 바뀜)라는 명칭이 어떻게 하여 생겨난 것인지? 與자나 黎 자가 무리라는 뜻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면 할 수 없고.
한번 더 말하면 高九黎는 고대 우리민족의 신앙에 따라 하늘나라에서 하늘나라 임금(不:불, 태양 지칭)의 아들 환웅(桓雄)과 함께 지상세계로 내려온 무리(與.黎)가 사는 곳 모두 또는 그 무리들이 사는 천하의 중심지라는 말을 뒤에 한자가 생긴 후 한자로 적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위 말은 중국왕조의 천자가 들으면 굉장히 기분 나쁜 소리이다. 변방 고구려 왕이 감히 자신을 하늘나라 임금님의 아들 운운하고, 고구려 무리들이 사는 곳이 천하의 중심지라고 하다니.. 기분 나쁘다.
그래서 중국왕조의 사관들은 高九黎라는 한자 칭호에서 어느 한자는 같은 발음의 다른 한자로 바꾸거나 어느 한자는 아예 빼버리고 高句麗, 高句驪, 句麗, 句驪 등으로 적었다. 高 자가 빠진 것은 중국의 사관들이 중국왕조의 황제 이외는 천제의 아들(天子)을 칭할 수 없는데도 감히 천제의 아들을 자칭하며 姓을 天帝를 뜻하는 高 씨를 사용하니 뺀 것이고, 천하의 중심지를 뜻하는 九 자를 句 자로 바꾼 것은 천하의 중심지는 중국왕조의 황제가 있는 곳인데 감히 변방 고구려 무리들이 자신들이 있는 곳을 천하의 중심지라고 자칭하니 九 자를 같은 발음의 다른 한자인 句 자로 바꾸어 버렸고, 변방 고구려 무리가 감히 자신들을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고 칭하니 무리를 뜻하는 黎를 검은 말을 뜻하는 驪 자로 바꾸었다. 더 기분이 나쁠 때는 下句驪라고 글자를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한나라와 막 싸우고 달려들은 고구려(高九黎:일명 北夫餘)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는 뜻인 高九黎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高九黎에서 떨어져 나와 나라를 세운 (고주몽)고구려는 초창기에 아직 힘도 약하고 하여 중국왕조를 의식하여 중국왕조가 적은 高句驪에서 驪 자를 麗 자로 바꾸는 선에서 국명을 高句麗로 적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고 더러워서 피한 것이다. 아마도 (고주몽)고구려는 한나라 사관들이 고구려를 高句驪라고 적는데 굳이 高九黎라고 적어 한나라와 아웅다웅 하느니 驪 자를 麗 자로 바꾸는 선에서 高句麗를 국명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중국왕조가 (고주몽)고구려의 국명에 하늘의 天帝 또는 지상에서 天帝의 아들을 뜻하는 高 자가 들어가는 것은 왜 막지 않고 허용해 주었는지 의문이다. 한나라 스스로 (고주몽)고구려를 高句驪로 적었기 때문이다. 高九黎에서 九 자나 黎 자는 다른 글자로 바꾸면서 왜 高 자만은 바꾸지 않았을까? 만약에 중국왕조(당시는 한나라)가 (고주몽)고구려의 국명으로 高 자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면 초창기에 힘이 약한 (고주몽)고구려로서는 高 자를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아마도 高 자 대신에 天帝를 뜻하는 다른 한자 즉 해(解, 위(慰), 백(白), 화(華), 옥(玉), 고(古:高와 같은 뜻이 있다.), 불(不,沸) 등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중국왕조가 (고주몽)고구려가 국명에 高 자를 집어 넣고 성씨를 高 자로 하는 것을 묵인해 준 것은 (고주몽)고구려가 한나라에 꼬리를 내리며 우리가 高氏를 사용하는 것은 高辛氏의 후예이므로 姓을 高氏로 한다고 둘러대자 묵인해 준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로서는 속이 뻔히 들어다 보이지만 어째던 (고주몽)고구려가 三皇五帝의 후손 중 1 무리임을 칭하며 정통성을 중국왕조에 돌리고 중국왕조의 그늘로 들어오겠다며 꼬리를 내리니 앞으로 고구려왕이 중국왕조 황제에게 내가 진짜 天帝의 아들이라고 대들거나 고구려 지역이 천하의 중심지라고 주장하며 대들 일이 없어지자 못 이기는체하고 (고주몽)고구려의 高氏 사용을 묵인해 준 것으로 보인다.
자!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高句麗의 麗의 원래 어원은 무리라는 뜻인 黎였다는 것, 黎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려,여"로 읽지 "이"로 읽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위략에는 北夫餘 일명 高九黎가 藁離國(高離國)으로 적혀 있다.
「魏略曰 舊志又言 昔北方有藁離之國者 其王者侍婢有身 王欲殺之 婢云 有氣如鷄子來下 我故有身 後生子 王捐之於溷中 猪以喙噓之 徙至馬閑 馬以氣噓之 不死 王疑以爲天子也 乃令其母收畜之 名曰東明常令牧馬 東明善射 王恐奪 其國也 欲殺之 東明走 南至施掩水 以弓擊水 魚鼈浮爲橋 東明得度 魚鼈乃解散 追兵不得渡 東明因都王夫餘之地.」
어! 고구려(북부여)가 고리국(藁離之國:高離國 )으로 적혀 있네. 그렇다면 한나라 때 이미 高九黎 일명 北夫餘를 藁離國(高離國)으로 불렀다는 말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왕조 사관들이 高九黎의 高 자는 빼버리거나 下 자로 바꾸고, 九 자는 빼버리거나 같은 발음의 句 자로 바꾸고, 黎 자는 驪 자로 바꾸어 작란치니 (고주몽)고구려 사관들이 보니 기분은 나쁘고 그렇다고 하여 건국한 초기부터 한나라에 대들려니 힘은 딸리고 타협책으로 중국왕조 사관들이 적은 高句驪에서 驪 자만 麗 자로 바꾸어 高句麗라 적어놓고는, 에라이! 엿 먹어라 하며 고구려에서 九 자를 빼고 같은 발음의 고려(藁離) 또는 고려(高離)로 적은 것이다.
이걸 보고 중국왕조 사관 중에는 좀 얼빵한 사람이 있었는지 어! 高麗를 藁離, 高離로도 적는구나 하고 高麗는 藁離, 高離로도 적는다고 삽질을 해놓았다. 그후 고구려가 멸망하고 수백년이 지난 11세기에 들어와 책부원구를 지을 때 옛날에 어느 또라이 사관이 "高麗는 藁離, 高離로도 적는다" 라고 삽질해 놓은 자료를 꺼내어 그 문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驪는 離로 읽는다"고 옆길로 빠지는 주석을 달아 놓았다. 그 뒤 신당서 끝에 달려 있는 당서석음(唐書釋音)을 지은 동충진(董衝進)은 위에 나온 藁離, 高離의 離를 아예 "리(이)"로 읽고 더 옆길로 빠져 고구려는 고구리로 읽어야 된다고 8번이나 삽질을 해 놓았고, 자치통감에 주석을 달은 胡三省은 완전 옆길로 빠져 당나라 시대 학자 육덕명 운운하며 무려 66번이나 고구려는 고구리로 읽어야 된다고 삽질을 해 놓았다.
高九黎 무리가 나라 이름 高句麗 대신에 高離 또는 藁離로 적어 놓은 것은 한나라 사관들이 高九黎 명칭에서 高 자ㅡ 九 자, 黎 자 모두 시비를 걸고 나오니 高 자를 피하여 藁 자로 적고, 九 자는 빼버리고, 黎 자를 피하여 離(려) 자로 적은 것인데, 무식한 육덕명이 고구려 사람들이 高九黎(고구려)를 왜 高句麗 또는 藁離(고려), 高離(고려)로 적었는지? 고구려 신앙과 어원을 연구하여 바로 알 생각은 않고 高, 句, 驪 자의 음운이 어떠니 하며 헛소리 해 놓으니, 수백년 뒤에 그걸 보고 동충진(동충?, 동위?)과 호삼성은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高句麗를 고구려로 읽던 고구리로 읽던 고구려로서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다만 나라 이름은 고구려 무리들이 지은 것이기 때문에 고구려 무리들이 지은 그대로 읽어주어야지 이미 지어 놓은 이름을 중국인들이 어떻게 읽는다고 하여 지어 놓은 이름을 바꾸어 중국인들이 읽는대로 따라 읽어야 한다는 말인가?
3. 高句驪는 고구리로 읽어야 된다고 적혀 있는 사서
高句麗(驪)를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고 적혀 있는 사서로는 冊府元龜(지은시기 1005-1013년)가 가장 먼저이고, 그 다음은 新唐書(지은시기 1044-1060년) 끝에 붙어 있는 宋 동충진(董衝進)이 지은 당서석음(唐書釋音)과 資治通鑒(지은시기 1065-1084년)의 胡三省(1230~1302년)의 주석이 비슷한 시기이고, 조선에는 龍飛御天歌(지은시기 477년) 5장 [麗運이 衰]에 대한 주석(麗音裏高麗也), 全韻玉篇(지은시기 조선 정조 때) 등이 있다. 그외 麗 자를 국명으로 읽을 때는 離로 읽어야 된다고 적혀 있는 康熙字典(지은시기 청나라 때)과 강희자전을 보고 지은 한·중·일의 여러 자전, 옥편 등이 있다.
이 중에서 高句麗(驪)를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주석을 달아 삽질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麗,驪 자에 대하여 驪力知翻, 麗隣知翻이라고 자치통감에 66회나 주석을 단 호삼성이고, 그 다음 신당서 끝에 붙어 있는 당서석음에 高麗下 呂支切, 力支切, 隣知切이라고 8번의 주석을 단 동충진이고, 그 다음이 자치통감 외신부 종종편에 달려 있는 1회 주석이다.
麗(驪)를 離로 읽어야 한다는 주석을 가장 먼저 달아 삽질을 한 사서는 冊府元龜인데 책부원구에 적혀 있는 문구를 살펴본다.
4. 冊府元龜에 적혀 있는 高麗 읽는법
책부원귀는 송나라 王欽若 등이 1005년부터 1013년까지 8년간 편찬한 역사책으로, 外臣部 種族篇에 高句麗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外臣部·種族
高句驪(亦作麗音離)東夷相傳以為夫馀別種凡有五族有消奴部(一作涓奴)絕奴部順奴部灌奴部桂婁部(高驪五部一曰內部一名黃部即桂婁部也。二曰北部一名後部即絕奴部也。三曰東部一名左部即順奴部也)一說夫馀王嘗得河伯女因閉於室內為日所引身避之日影。又逐既而有孕生一卵大如五升夫馀王棄之與犬犬不食與豕豕不食棄於路牛馬避之棄於野眾鳥以毛茹之王剖之不能破遂還其母母以物裹置暖處有一男破而出及長字之曰:朱蒙朱蒙善射夫馀之臣謀殺之乃東走北至紇升骨城遂居焉號曰:高句驪以高為氏。水貊句驪別種依小水為居因名.
위에 나오는 高句驪(亦作麗音離)의 의미는 무엇일까? 高句驪는 高句麗라고도 적으며, 麗,驪의 음은 離로 읽으라는 것인데, 麗,驪나 離 모두 "려" 로도 읽고 "리" 로도 읽는다. 그렇다면 "려"로 읽어라는 것인가? 아니면 "리"로 읽어라는 것인가? 만약 고구리로 읽으라는 말이라면 한나라, 위나라, 진나라, 송, 남제, 양, 북위, 북주, 북제, 수나라의 역사를 적은 사서에는 왜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육덕명 이전 중국왕조의 사학자들은 모조리 엉터리였다는 말인가? 아니면 혹시 책부원귀를 지을 무렵에 존재한 왕건의 高麗 발음이 "고리"로 바뀌어 착각을 한 것인가?
왕건의 고려 발음은 고려이다. 1287년 고려 충렬왕 때 지은 제왕운기를 보면 高麗가 高禮(고려)로 적혀 있다. 참고로 禮는 례(예), 레, 리, 려 등으로 읽을 수 있으나(盧啓切 里弟切 良以切竝音蠡) 고려 때는 禮가 례(예)와 려로 쓰인 경우 이외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 제왕운기를 지을 때 왕건이 세운 高麗를 고리로 읽었다면 高禮로 적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책부원귀를 지을 무렵에 존재한 왕건의 高麗 발음이 "고리"로 바뀌어 착각을 한 것도 아니다.
책부원귀에 驪는 離로 읽으라고 적혀 있는 것은(高句驪(亦作麗音離) 고구려 무리가 高九黎를 高句麗, 藁離 등으로 적은 것과 관련이 있다.
5. 新唐書에 적혀 있는 高麗 읽는법
책부원귀보다 좀 뒤에 송나라 仁宗 때 구양수(歐陽修)ㆍ송기(宋祈) 등이 1060년에 신당서를 완성하였다. 신당서 끝에는 동충진(董衝進)이 지은 당서석음(唐書釋音) 25권이 덧붙어 있는데, 이 당서석음에는 麗 음을 "리"로 읽으라고 8회나 적혀 있다. 당서석음에 적혀 있는 麗 음의 음가는 고구려인들이 읽은 음가가 아니고 중국인들이 읽은 음가이다.
1). 당서석음 권1
가. 당서원문 권2 본기2, 高麗下呂支切,
나. 당서원문 권3 본기3 高麗下力支切
2). 당서석음 권3
당서원문 권21 예악지11, 高麗下力知切
3). 당서석음 권4
당서원문 권33 천문지23 高麗下力知切
4). 당서석음 권5
당서원문 권43하 지리지33하 高麗下隣知切
5). 당서석음 권23
당서원문 권219 열전144 高麗下隣之切
6). 당서석음 권24
당서원문 권220 열전145 高麗下隣知切
6. 강희자전에 적혀 있는 고려 읽는법
청나라 강희제 때 진정경(陳廷敬) ·장옥서(張玉書) 등 30명이 1716년에 완성한 자전이다.
麗 읽는 법에 대하여,
唐韻, 集韻, 韻會 : 郞計切(郞+計의 반절음)
正韻 : 力霽切(力+霽의 반절음)
廣韻 : 呂支切(呂+支의 반절음),
集韻, 韻會 : 鄰知切(隣+知의 반절음),
正韻 : 鄰溪切(隣+溪의 반절음),
고려국명으로 읽을 때는 離로 읽어라고 적혀 있다.
釋名 麗離也...又高麗國名 魏志 高句麗在遼東之東. 前漢書 作高句驪
강희자전에 적혀 있는 麗 읽는법은 책부원귀와 신당서 당서석음(唐書釋音) 등을 보고 지은 것이다.
7. 전운옥편(全韻玉篇)에 적혀 있는 고려 읽는법
전운옥편은 정조 때(1776~1800) 만든 옥편으로 지은이는 미상이다. 중국의 강희자전을 본떠서 만들었다. 麗 자를 읽는 법 두 가지가 적혀 있는데 강희자전을 보고 만든 것이라서 강희자전처럼 高麗라는 나라 이름으로 읽을 때는 麗를 "리"로 읽으라고 적혀 있다.
麗
리로 읽는 경우: 附 著 東國高- 陳名魚- (支)
려로 읽는 경우: 美也 華也 施也 偶數 高樓 -譙 (霽)
이 외에도 한.중.일 여러 옥편이나 자전에 麗를 高麗라는 나라 이름으로 읽을 때는 "리"로 읽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모두 강희자전을 보고 지은 것이다.
8. 외국인들의 표기
고려 때 벽란도를 드나든 아라비아 상인들은 고려 발음을 Coree(꼬레)로 적었고, 이것이 훗날 Corea나 Korea로 바뀌었다. 즉 高麗 발음은 "고려"였다.
아래에 나오는 내용은 당사자들이 직접 고려에 와서 듣고 적은 것이 아니라 중국인, 몽골인, 일본인들로부터 고려 발음을 전해 듣고 적은 것이라서 고려가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였는지 고리라 하였는지 이해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들이 고려를 뭐라고 불렀는지 참고하라고 적어 놓았다.
1253년에 로마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몽골의 칸에게 특사로 보낸 기욤 뤼브뤼크는 1255년에 쓴 여행기에 고려를 Caule로 적었다. 이 Caule는 당시 몽골인들의 고려 발음을 듣고 적은 것이다.
1271년에 마코 폴로가 육로로 몽골, 중국을 여행하다 1295년에 돌아와 출간한 "마코 폴로의 여행"에 高麗를 Cauli로 적었다. 이것이 1477년에 독일어 번역본으로 나온 후 여러나라 언어로 출간되면서 각국의 언어 특성에 따라 高麗를 Cauly, Kaoli, Kauli 등으로 적었다. 이는 당시 유럽인들의 고려 발음이다.
그뒤 1300년대에 일한제국의 라시드 알딘이 지은 역사서 "종합사"에 高麗를 Kaoli로, 高句麗를 KaoKauli로 적었다. 이는 당시 몽골인들의 고려 발음을 듣고 적은 것이다.
그뒤 1516년에 오스만 터키제국의 알리 아크바르가 지은 중국여행기 "키타이 서"에서 高麗를 Kaoli로 적었다. 이는 당시 중국인들의 고려 발음을 듣고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인 1500년대 후반부터 일본, 조선 근해를 드나들던 포튜칼, 네들란드인 등 유럽인들은 일본인들의 高麗 발음을 듣고 Corai, Couray, Corey, Corei, Core, Corea, Coree 등으로 적었고, 1596년 네들랜드인 잰반 린쇼텐은 "항해기"에서 지도의 "朝鮮" 부분에 Insula de Core라 적고 지금은 ChauSien이라 부른다고 적었다.
1668년에 네델란드인 헨드릭 하멜이 쓴 "스페러호의 불운한 항해표류기"에는 "朝鮮"을 "Coree"로 적었고, 그후 각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는데 독일판은 "Corea"와 "Korea"가 혼용되었다.
9. 결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나라 때 高九黎 일명 北夫餘를 고려국(藁離國)으로 적은 것을 중국 사학자들이 고리국으로 읽고는 고구려의 麗를 나라 이름으로 읽을 때는 離로 읽어라고 삽질한 것이 고구려가 멸망한 후 한참 세월이 지난 11세기에 들어와 옛날 사료를 꺼내어 고려국(藁離國, 高離國)은 고리국으로 읽어야 한다고 책부원귀, 신당서 당서석음(唐書釋音), 자치통감의 호삼성 주석 순서대로 삽질을 계속하였고, 청나라 때 강희자전에 그것이 실린 후 한.중.일의 각종 옥편과 자전에 삽질이 전승되었다.
조선시대에 지은 여러 사적에 고려의 려를 "리"로 읽어야 된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모두 책부원귀, 신당서 당서석음, 자치통감의 호삼성 주석 등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 고구려나 고려에 관한 우리 민족의 자료를 찾아보고 적은 것이 아니다. 마치 김치가 일본으로 가서 기무치로 읽히자 한국에서 김치를 뭐라고 했는지 찾아보지 않고 일본에서 기무치라고 하니 우리가 김치라고 부르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고 원래 이름은 기무치라고 오도방정을 떠는 것과 같다.
용비어천가에 麗를 裏로 읽는다고 적혀 있는 내용은 중국의 사적에 驪를 離로 읽는다고 적혀 있는 내용을 참고한 것이다. 그러나 성종 때 우리 민족의 자료를 찾아보고 지은 삼강행실도 언해본이나 영조 때 지은 동몽선습 언해본, 정조 때 지은 오륜행실도 등에는 고구려, 고려로 적혀 있다.
혹시 高句麗를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 발음하는대로 고쿠리나 까우리로 꼭 발음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이민을 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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