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강해 2,)      반드시 속히 될 일(계1:4~8)



사도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몸된 교회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음을 찬양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하나님의 부르심이 피조물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부르심이 존귀한 만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의무) 또한 막중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여 있지만(출19:5), 많은 민족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셔서(거룩해서 부르신 것이 아님) 특별한 제사장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봉사하도록 하셨으므로 그 백성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그 백성은 그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여 그들에게 맡겨진 책임은 외면한 채 오직 선민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었으며, 나중에는 그것까지도 잊어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는 말씀대로 그의 피 흘리신 대속사역을 통해서 12지파 대신 12사도를 세우시고, 그 터 위에 새로운 이스라엘을 구성하셔서 처음 창조에서부터 목표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하셨다는 것이다. 즉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사역하시기를 원하셨다는 뜻이다.

주님의 오심만을 바라보며,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백성들에게 "반드시 속히 될 일(1:1)"을 계시하면서 ...
주님께서 오실 때는 어떻게 오실 것인가?
그리고 그때에는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부터 전제하며, 믿음의 눈을 뜨고 보라고 명하고 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현세를 살지만, 현세를 넘어 영원한 세계를 포착한 자들이므로 장차 그들에게 나타날 날을 믿고 확신하며 고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스도의 날이요 주의 날이며, 심판의 날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장차 나타날 날"을 알고 현세에서부터 체험하며 즐길 수 있음이 시련속에서도 넉넉히 이기는 힘인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내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우리의 생은 고난 자체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복음 때문에 받는 시련까지 가중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방식은 그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인식하지만,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장차 있게될 영광스러운 사건에 비추어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즉 이생의 삶과 오는 세대에서 있게될 삶을 비교하고 그때의 영광의 가치와 값의 차이를 아는 그 믿음의 힘으로 이기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마24:30, 행1:9).
주님께서 초림하셨을 때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신 초라한 모습으로, 또 모든 사람들의 눈에 숨긴 바되어 나타나셨으나, 다시 오시는 재림은 영광의 주로서 오시고, 심판주로서 오시기 때문에 구름을 타고 천사들의 호의를 받으며 오시고, 모든 인류가 볼 수 있도록 오신다. 모든 인류가 그를 볼 것이므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찌른 자들뿐만 아니라, 그의 몸(교회)을 찌른 자들도 모두가 볼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창세이후로 존재했던 산자와 죽은 자들뿐 아니라, 모든 천사들, 만물들, 사단과 귀신들까지 다 그 앞에 굴복하여 애곡할 것이다. 과거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가장 큰 심판이요 마지막 심판이다. 그리고 가장 공평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고난 당하는 교회는 감사와 찬양으로, 대적자들은 애통과 통곡하는 날로 바뀔 것이다. 주님 앞에서 감히 핑계할 수 없고, 또 심판의 중함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밖에 있는 모든 자들은 차라리 굴과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를 향하여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6:16)"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하니 그 은혜를 저 버린자들의 심판 또한 영원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전능성(능력에 한계가 없다), 하나님의 영원성(시작과 끝이 없다), 하나님의 전지(모르는게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편재성(아니계신 곳이 없다), 하나님의 완전성(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의 불변(거짓되지 않고, 바꾸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거룩(죄와는 분리되신다) 등을 이해하고 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믿고 확신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진리로 받는 자들이다. 우리가 믿지 않아도 하나님의 진리는 사실로서의 진리이며, 또 영원할 뿐이다. 우리가 믿어줘야만 비로소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다. 아는 만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믿고 확신하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요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이다.

주님의 몸으로서 지상의 교회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전투하는 교회로 존재한다. 당시뿐 아니라, 현세에도... 만약 전투가 없다면 생명을 잃은 집단이든지 아니면 완성된 교회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개개인 뿐 아니라, 조직체로서의 유형교회도...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께서는 그의 몸인 교회에게 옛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동일한 거룩을 요구하신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교회의 생명은 거룩(성결)이다. 이 거룩을 잃으면 곧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옛 백성들에게는 외주사역이었는데 비해 그리스도안에 있는 새 백성들에게는 내주하셔서 사역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가져온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은 죄만을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한 백성을 만드시기 위한 사역이었다. 세상나라 안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 두 실재와 두 가지의 법, 영과 육의 싸움...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부름받은 백성은 거듭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거룩을 연습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성령은 죄와 악에 대하여 거부하는 저항세력이다.
"거룩(카도쉬)"은 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즉 옛사람의 생활방식을 벗는 것이다. 이것이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다. 죄악을 품고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는 것은 허사를 경영하는 것, 죄와의 투쟁을 통해, 죄에서 자유한 참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을 뿐이다.

당시 로마의 권세를 수단으로 해서 교회를 핍박하던 사단은 오늘날은 또다른 방편(수단)으로 교회를 미혹해서 넘어뜨리고 있음을 살필 수 있는 신령한 눈과 귀가 있어야 한다. 무력에 의한 핍박만이 박해가 아니다. 물질주의, 상업주의, 황금 만능주의..등의 유혹을 바르게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분별력이 있으면 미혹하는 영들의 역사가 오늘 우리 한국교회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어떻게 변질시켰으며, 그래서 어떻게 다른 복음으로 대치해 놓았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할 수 있고 영적인 전투에 바른 자세로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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