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시베리아<1>


시베리아는 역시 멀고도 험난했다.
4년전 MTB(산악 자전거)를 시작하면서 1차적으로 최종 목표로 삼았던 바이칼호, 러시아 여객기의 덤핑 요금이 나오는 바람에 예상외로 앞 당겨진, 시베리아 대장정 라이딩이 실현되었지만 원래 잔차여행전문 매니아인 만치 흔히 혼자나 단 두사람까지의 라이딩만 하다가 본의 아니게 여성 세명까지 동반하는, 다섯명 단체여행의 인솔자 격이 되어 4박6일간의 좀 거창한 행사를 치룬 느낌이다.
인천국제 공항 보세지역 당초 동행이 되기로 한 40대 초반의 젊은 친구가 빠져 결과적으로 무슨 `로맨스그레이`팀 비슷하게 된것이 못내 유감스럽기도 하지만 하여튼 바이칼호까지의 무려 91개의 고개(큰 고개만도 30개)를 넘고 넘었던 힘든 라이딩에다 막판에 의외의 봉변을 당한 일도 이제 추억꺼리로 남은 셈이다..
총 9회분으로 나눠 상세히 정리, 소개해 본다


<북한 고위 인사와의 의외적인 조우도.>

35도를 웃도는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지난8월12일(04년) 한낮, 1시20분께 우리 자유여행팀 15명(베낭팀 10명 포함)은 약속장소인 인천 국제공항 J코너에 모여 여행사 담당자의 설명과 더불어 비행기 예약티켓 4장씩(왕복의 국제선과 국내선 2장씩)을 받아 티켓팅과 소화물 탁송을 의뢰한뒤 3시반께 러시아의 다라비아 항공의 중형기에 올랐다.
출국수속때는 내 베낭속의 육각렌지가 검색에 걸려 체면을 깎였다.
이 라이딩여행을 준비하느라고 사전에 여성회원 20여명을 뫃아 놓고 2시간여에 걸친 잔차여행과 잔차의 항공 운송에 관한 강의와 실습까지 시켰음에도 선생격인 본인이 먼저 검색에 걸렸고 분명 당시 이 문제의 강의도 받은 한 여성도 과도까지 가져왔다가 체크당해 육각렌지와 함께 따로 직접 소화물로 부치느라고 진땀을 빼기도 했는데 기다리던 일행이 수고했다는 뜻으로 박수로 맞아 줬지만 더 무안했을 뿐이다.
우리 MTB팀은 고교 동기동창이며 경력 7년의 일산 호수MTB의 60대 서회장(크라인)과 그리고 분당여성자전거회의 베테랑인 50대초반 김총무(스페샬 풀샥), 60대후반의 시그마님(티타늄 지온), 40대후반의 막내(티타늄), 그리고 경력3년반의 나(토막)까지 5명.
탑승전 대기실에서는 그 동안 여행사 홈피 게시판을 통해 교유를 한 우리 일행의 배낭팀을 순전히 예감으로 한사람 한사람씩 다 찾아내 인사를 나누고 또 그 들끼리도 인사를 하도록 유도 해줬드니 모두들 좋아 했다.
지정 게이트로의 이동중 특히 맨 마지막으로 겨우 찾아 낸, 이르크추크에 머물면서 바이칼호등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을 올려 놓은 홈피도 운영하고 있어 출국전까지 이메일로 많은 정보를 보내 줘 크로스체크에 큰 도움을 준 박상훈님의 친지인 부산의 30대 여성 박모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박선생과의 약속이라며 `잘 모시고 가기로 했다.`라는 이 노선배의 농담 같은 말에 송구스런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는데 뒤에 귀국때 우리 MTB팀이 난처한 지경에 놓였을때 그의 도움을 받아 해결 할 줄이야...

드디어 러시아기에 올라보니 좌석의 절반 이상은 한국인 관광객들이었고.. 옆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이 자리가 바로 상견례모임까지 나오고 출발 3일전, 회사업무로 그렇게 마음 아파하며 우리 일행에서 빠지고 만 삼각지의 40대초반의 박사장 자리임을 알고는 다시 섭섭한 마음이 됐다.

하필 혜초여행사의 `자유여행 4박6일 바이칼`종목을 택한 것은 요금이 국적기보다 매우 싼 덤핑값이라는 점외로도 러시아기로의 여행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또 러시아기인 만치 북한을 내려다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는데 얼마뒤 동해바다 상공을 나르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야~역시 북한 외교가 세구나.`라는 등의 얘기를 나누며 러시아 여성 스튜어디스가 날라다 주는 냉장이 안된, 러시아제 캔맥주와 오린지 쥬스, 그리고 `와인`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단순한 맛의 탄산음료수등을 마셨다. 스튜들은 미인도 아니고 젊은이도 아닌, 심지어 뚱보 아줌마도 있어 눈요기 감도 없는 셈.

또 화제가운데는 러시아기의 안전성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 실은 러시아기의 조종사들은 모두가 왕년의 소련 공군기 파일럿 출신들이라서 조종술이 뛰어 나 세계에서 항공기 사고율이 가장 낮다는 얘기도 나와 떠나기전 동네 샵에서 겁을 주던 한 바이커의 말을 무시할 수 있었다.
차지도 않은 맥주 캔을 두개나 마시고 나자 어느새 저녁 6시가 넘어 저녁 식사가 나왔는데 한국산 기내식. 점심을 공항에서 햄버거로 떼워선지 옆자리의 여성팀이 밥에 강낭콩 따위와 생선튀김이 든 도시락 하나를 안먹고 내게 넘겨주는 통에 도시락 두개에, 빵 두쪽에 버터 제리 과일쪽 야채에 후식 과자따위를 깡그리 다 먹어치워 너무 포만했다.

사전에 혜초여행사 게시판( http://www.hyecho.com/board_content.asp?num=198&key=&op=&page=4&tablename=board3 )등과 개인 이메일로도 유도해 낸 현지의 정보들을 많이 올리고 또 알려주는 등으로 너무도 유명(?)해진 덕분인지 심지어 베낭팀 여성들로 부터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지만 관광사의 배려로 일행중 맨 앞이면서도 창가 자리를 배정받아 쉽게 아래를 내려다 보니 러시아 초원이 보이고 우수리강과 흑룡강이 보이더니 3시간 반만에 하바로푸스크에 닿아 트랩을 내려 오면서 서늘한 기온에 모두들 `와~시원하구먼..`이라는 환성을 올렸다.
왕년의 공산주의 나라답게 좀 우충충한 청사에는 가트도 없어 잔차가방을 찾아 직접 메고서 바로 옆동인 국내선청사로 갔는데 비교적 작은 체격의 여성분들도 몸체보다 더 큰, 큼지막한 잔차가방을 메고 가는 것이 좀 안스러워 보이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모두 10키로 안팎의 가벼운 고급MTB여서 운반에 별 문제는 없는 듯 했다.
청사밖에는 9시가 넘어도 환해 전차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금방 어두워진 뒤인 밤 10시반께 같은 회사의 비슷한 크기의 국내기로 갈아탔다.
러시아 항공사의 기내식-이 것외로 생선까스등이 든 밥 도시락도 있다 밤이 늦어 모두가 졸려하고 있을때 저녁인지 밤참인지 모를 끼니가 또 나왔는데 이번에는 러시아산으로 한국산과 비슷하나 야채가 좀 많은 편이라서 호평이었고 아직 포만감이 남아 있었지만 러시아에서의 힘든 라이딩을 고려, 역시 깡그리 먹어 치우는 왕성한 식욕을 과시했다.
이 때쯤 창밖으로, 먼 남쪽 하늘이 고운 쪽빛인 백야 현상이 보이기 시작해 탑승객들은 그 화려한 빛갈에 탄성을 올렸다.

4시간 만인 밤 11반께야 이르크추크공항에 내려 숙소측에서 마중나온, 심춘보씨 형제분들의 마중을 받았고, 탁송화물을 기다리는 동안 바람을 쏘이러 늦은 가을 날씨처럼 서늘하고 어두운 청사밖에 잠시 나갔다가 김일성배지에 고급천의 인민복을 입은, 50대후반의 한 신사와 딱 마주쳤다.
거물급 인사인 양 중후한 느낌을 주는 이 신사는 이쪽서 먼저 `여~북한에서 오신 분이구먼요..`라며 악수를 청하자 마치 서커스단의 삐에로 같은, 이상한 차림의 MTB복색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응했고 `남한에서 바이칼호수로 자전거를 타려고 왔다. 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의 묘향산등지로도 잔차여행을 갔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에도 반신반의로 `그래요?/..`라고 했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통일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바다로 쓸어 넣어야 한다.`는 강경한 말을 건네자 약간 놀라는 표정이 돼 내 이름부터 묻는다. 이에 `명함을 주면 나도 명함을 주지요.`라고 했지만 대답이 없다.
나는 몇년전 금강산에 갔다가 북한 안내원들과 만나서도 별 서스럼이 이런 말까지 했었다는 얘기를 들려 주고는 우리 일행을 소개해 주고 싶다며 팔장을 끼다시피하고 밝은 청사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화물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많은 한 가운데서 서회장등과 인사를 나누게 했는데 모두가 갑작스런 일로 좀 굳어진 표정이 돼 목례를 했고 그 다음에는 모두의 시선이 그 배지로 쏠려 `야~이거구나..`하며 탄성들..
허나 이 신사는 주위가 모두 남한 사람들인 점이 마음들지 않았든지 우리 일행속에서 벗어 났고 `왜 벌써 가시려느냐?`며 다시 팔을 잡으려 하자 어느새 눈길이 매서운 점프차림의 북한 청년이 나타나 그 신사를 호위하듯 데려 나갔다.
이런 내 돌출행위에 비로소 주위사람들은 `역시 여기는 러시아땅이구나/`라는 새삼스런 자각심과 더불어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또 어떤이는 내게 가벼운 미소를 보내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7년전인가, 몽골을 방문했을때 갑자기 만난 북한대사에 대한 이런 서스럼없는 내 행위에 대한 다른 관광객들의 반응을 상기케 하기도 했다.
바이칼호와 이르크추크시 주변도 사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촌극을 벌여 많은 사람들의 각가지 반응들과, 또 찰라적으로 나마 사스팬스와 스릴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 즐기는 걸로 오해 받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런 친근감 조성도 통일을 앞당기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고, 이래서 한시바삐 통일이 이뤄져 북한으로도 잔차여행을 가고 더 나아가 간도를 거치고 몽골을 거쳐 바이칼의 알흔섬까지도 라이딩하고 싶은 것이 바로 내 소망.

우리팀 15명은 심씨가 불러 온 버스에 잔차가방등을 싣고서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이르크추크의 중심, 다운타운 거리를 누벼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에 앙가라강변의, 정문위의 대형 간판에 태극기등 30여개국의 국기가 그려져 있는, 바이칼 호텔에 도착했다.
실은 우리팀은 원래 앙가라강 서쪽의 신흥 주택지에 있는 심씨집-즉 펜더하우스에서 4일밤 모두 묵기로 되어 있었으나 심씨가 거주지 증명(러시아서는 이것 없이는 체류못함)을 발급할 수 없어 편의상 호텔에서 하루밤을 묵기로 한것이다.

2006년판 `분당문학`(4*6배판 통권 제2권 264p)
***아래에 달린 리플은 이 글을 MTB매니아들의 전문 페이지인 `와일드 바이크` 게시판의 `투어 스토리`에 연재했을 때 매니아님들이 붙여 준 코멘트 입니다. 9월 6일 하오 현재 695분이 보고 가셨군요***

kmy40 ::: 히야 2편이 궁금해지는군요
러시아 쪽의 신선한 느낌이네요
연세에 비하여 모두들 대단하십니다.
여러분들의 도전에 저두 모르게 고개가 떨구어 집니다.
끊임없는 도전에 화이팅하며 2편 기대할께요

treky ::: 오웃 멋저라 부럽습니다.

<> 우측의 사진은 분당 문인들의 모임체인 분당문학회의 년간지인 `분당문학`의 표지로 여행스캐치 란에 이 `멀고 먼 시베리아`편 4~6회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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