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나라 남해섬<1>



창선도에서 본  창선대교
"이제 우리 모두가 孤獨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거나, 어떻게 지혜롭게 克服하느냐는 숙제를 풀기에 苦心하기 마련입니다..."
모처럼 2박3일의 외로운 남해섬 일주 MTB여행을 하면서 한 찜질방에서 작성한, 고교동창모임 초대장 글의 한 구절이다.
농수산물이 많고 절경지가 많아선지 남해 군당국이 자칭 `보물섬`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 섬은 이런 구상을 하기도 좋은, 호젓한 여행지로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최남단인만치 초겨울이지만 아직도 포근한 날씨로, 그래서 북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왔던 김만철씨 일가족이 처음 둥지를 틀기도 했던 바로 이 남해군을 여행한 나그네에게는 그 멋진 風光들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殘光으로 오래 남는다.

남해섬 일주 라이딩은 지난 11월2일(04) 하오 4시께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시작됐다.
대개 남해섬 일주 라이딩은 남해대교로 부터 시작,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이 상례인것 같으나 접근이 쉽고 빠른 쪽을 택하다 보니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한것이다.
이날 아침 10시 분당 테마폴리스 시외버스터미널서 고속버스로 진주에 왔고 다시 직행버스편으로 삼천포에 도착해서는 분주하게 창선삼천포대교쪽으로 가다가 부두 입구의 한 횟집에서 늦은 점심으로 6천원짜리 매운탕을 시켰드니 어른 손바닥 크기만한, 큼직한 우럭 한마리에 덤으로 새끼 한마리도 넣은 매운탕의 국물맛이 괜찮아 밥 두그릇을 먹어 치웠다.
창선삼천포대교 그리고 남해로 넘어가는 높다란 다리에 오르니 바람이 너무 세서 좁은 인도로 잔차를 몰고 가기가 어려워 끌고서 건너는데 중간에 섬이 4개나 있어 모두 5개나되는 다리를 건너기가 좀 지루하다.
일찌기 TV서 이 다리들로 관광객이 몰려 와, 그 동안 외딴 섬에서 갑자기 번잡스런 곳이 되었다는, 중간에 있는 4개의 섬도 절로 인심도 바뀌었다는 사연도 소개되었지만 어디를 봐도 그림 같은 풍치여서 결코 지루할 수 없겠지만 5시가 다 되어 가는 만치 담당 직원이 퇴근하기전에 다리 건너편에 있다는 관광안내소에 가서 남해섬 지도를 챙기고 또 참고 사항도 듣고 싶어서 마음이 좀 조급했기 때문.
맨 마지막 다리를 건너 다리밑으로 내려가 보니 마치 신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같이 멋진 대형 요트형 건축물이 남해군 수협 활어회 공판장으로 되어 있었고 그 맞은 편의 관광안내소에 5시정각에 도착했지만 문은 이미 잠겨 있다. 옆가게 물어 보니 `좀 전에 직원이 있었는데..`라며 지도 한장을 구해 줬다.
이날밤의 숙식을 고려해서라도 좀 무리가 되더라도 1백리길의 미조항까지 갈 계흭이었던 만치 서둘러 갈길을 재촉했는데 요즘의 비싼 유류값 때문인지 통행 차량이 별로 없어 비교적 한가롭게 달릴 수 있었고 창선대교에 이르자 바다에는 이곳 저곳에 원시어업의 죽방림이 보였고 땅거미가 짙어져 다리위의 가로등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
남해군 수협의 활어회 공판장 얼마전 TV에서는 죽방림이 현대속의 신기한 원시 풍속도처럼 소개했었지만 이 곳에서는 곳곳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것.
다리를 건너 계속 질주하자 어느새 칠흑같은 밤이 되어 라이트를 달아야 했고, 미조항까지 16K라는 표지가 있는, 물건리라는 큰 동네가 나와 숨을 돌리는데 조수석에 4~5살짜리 딸내미를 태운 트럭을 몰고 나타난 이 동네에 산다는 젊은 부인이 이 노 바이커에게 상향등 켜는 방법을 가르쳐 달란다.
또 뒤이어 등장한 한 아저씨는 길을 묻는 이 바이커에게 `야~ 멋장이 아저씨네예.`라며 질문 공세다.
서둘러 산 비탈길을 내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왼편 산밑의 동네 불빛이 드문드문 보일뿐 먼 바다는 보이지도 않고 오른 편은 계속 나무가 울창한 산이고 통행 차량도 거의 없다.
20리쯤을 더 달린 후 부터는 산줄기를 오르내리며 또 구비를 치는 산길이 계속 되었고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해 마치 곧 옛날 산적이라도 나올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옛날 중학교 2학년때 환도에 따라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부친의 친지소개로 하필 미아리 공동묘지 사무장 집에 기숙을 했을때가 얼핏 떠 올랐다.
남해섬 일주도 당시 밤중에는 흔히 `캐캥..`하는 여우 울음 소리가 들려 오기도 하는 몬도가네한 곳이었지만 덕분에 항상 고사떡이 내 책상머리에 쌓여 있어 배곯이는 없었던 하숙집시절 얘기다.
허나 문제는 워낙 먼 통학길, 효자동 학교까지 가려면 버스한번, 전차 세번을 갈아 타야했는데 낮이 짧은 겨울에 청소당번이 되면 배도 곺아 흔히 지름길을 택해 깜깜한 밤에 공동묘지 깊숙한 길을 걸어 귀가하곤 했고 맨 후미진 곳에 있는, 당시에는 글 그대로 정말 여학생 무덤인줄 알았던 `女學生 之墓`앞을 지날때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도 목청끝 노래를 부르며 통과하곤 했다.
이런 경력때문인지 여늬 사람들에 비해 겁이 없는 편인지도 모른다.
이런 겁없는 성정 때문에 시베리아 바이칼호에 가서도 마구 쏘다니다가 봉변을 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까지 하며 지리하게 고개를 넘고 넘으며, 또 구비길을 돌고 돌았는데 통행차량도 없는 만치 최단거리로 달리기 위해 차선을 완전히 무시, 직선 주행을 했다.
8시가 훨씬 지나서야 드디어 한적한 미조항에 닿았고 인터넷서 등장했던 수협위판장 뒷편의 `공주집`을 찾았다.
다행히 아직 문을 안 닫아 두 아줌마가 나그네를 맞아줬고 곧 밥상에 남해 막걸리와 갈치회무침(1만원)이 놓여 졌다.
역시 관광지인 만치 값에 비해 고기량이 좀 적은 느낌이었으나 갈치회맛은 싱싱하고 고소 했다.
그리고 20년전쯤 승용차편으로 가족을 인솔, 인근의 송정해수욕장서 이틀간 민박을 하면서 뒤늦게 그 맛에 매혹되었던, 그 남해 막걸리도 옛날 바로 구수한 그맛 그대로다.
이 식당 벽은 온통 나그네의 낙서 투성, 그래서 이 나그네도 주방쪽 벽에
"Yahoo Korea서 찾아 볼수 있는,
`MTB여행 브라보` 홈피 주인도 왔다 감"
이라는 싸인을 했더니 주인 아줌마가 `멋진데 예..`라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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